1. 사건개요 (실화개요)
1971년 1월 23일 오후 1시 34분경 승객 55명과 승무원 5명을 태운 속초공항 발 김포국제공항 행 대한항공 소속 포커 F27이 홍천 상공에서 하이재킹당해 납북될 뻔한 사건을 말합니다.
이륙한 지 27분이 지난 1시 34분 홍천 1만 피트(3,048m) 상공에서 폭탄 2개가 폭발했는데 이 폭발로 기체에 20cm 가량의 큰 구멍이 나고 이륙할 때 잠가 놓았던 조종실 문이 부서져 버렸다. 당시 항공 보안관 최천일은 폭발 지점에서 불과 50cm 떨어져 있었으나 기적적으로 부상은 피할 수 있었다.
조종실 문이 부서지자 납치범 김상태는 남은 폭탄을 들고 조종사들에게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나온 놈이다. 북으로 기수를 돌려라!"고 강요했다.
폭탄이 터지자마자 이강흔 기장은 비행기가 납치됐다는 무전을 남겼다. 무전 내용은 "납치범이 탔다. 위치는 강릉 서쪽 30km 지점." 다행히 이 무전은 관제센터와 속초공항 관제탑에 무사히 청취되었고 대한민국 공군은 납치 소식을 전해 들어 연료와 무장을 만재한 F-5A 두 대를 긴급출격시켰다. 이 F-5 두 대는 15분만에 납치된 포커 대한항공 소속 포커 27과 조우했다.
조종실 문이 부서지자 납치범 김상태는 남은 폭탄을 들고 조종사들에게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나온 놈이다. 북으로 기수를 돌려라!"고 강요했다. 이강흔 기장은 일단 납치범의 협박에 순응하는 척하며 기수를 북쪽으로 돌리는 한편 강원도 고성군에 비상착륙하기로 했다. 강원도 고성군 화진포 해변에 낮게 접근하면서 '북한에 다 왔다'며 랜딩기어를 내렸으나 하필 고성군이 고향이었던 납치범 김상태가 착륙하는 곳이 화진포임을 알아채는 바람에 랜딩 기어를 다시 올리고 계속 북으로 향하게 된다.
휴전선 이남 20km, 공군에서 발진시킨 F-5 2대는 기체가 더 이상 북쪽으로 가는 걸 막기 위해 납치된 여객기를 에워쌌다.
객실에서 몰래 조종실과 인터폰을 하던 승무원 최석자 씨와 항공 보안관 최천일 씨는 기지를 발휘해 승객들에게 범인을 속이기 위해 크게 통곡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와 함께 "북한 상공에 들어왔습니다, 이북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으니 가지고 있는 증명서를 모두 찢어 버리십시오" 라는 거짓 기내 방송을 했다. 여기저기서 승객들이 통곡하자 항공 보안관 최천일은 승객들을 달래는 척하면서 납치범 김상태에게 천천히 접근했다.
여기에 이강흔 기장은 급하게 출격한 공군 F-5를 북한군 미그기가 마중 나왔다고 속였다. F-5는 대한민국 국군이 1968년에 도입한 전투기로, 정보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당시의 상황과 맞물려서 1971년까지도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외형의 신형 기종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김상태는 이 전투기가 대한민국 공군의 전투기라는 것을 모른 채 정말 미그기라고 믿었다.
납치범 김상태가 F-5로 시선을 돌리자 항공 보안관 최천일과 수습 조종사 전명세가 즉시 권총을 뽑아 김상태를 저격했다. 김상태는 항공 보안관 최천일이 쏜 총알에 머리를 맞고 쓰러져 제압당했지만 김상태가 갖고 있던 폭탄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점화되고 말았다. 이를 바로 본 수습 조종사 전명세가 바로 몸으로 폭탄을 덮었는데 폭발로 인한 피해는 최소화되었지만 전명세는 왼팔과 오른쪽 다리가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다.
결론적으로 납치범 김상태가 사살되었고 기적적으로 항공기가 공중분해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객실이 파손되며 여압이 상실된 데다 조종계통이 손상된 탓에 이강흔 기장은 기체를 급강하해 이륙한 지 1시간 11분이 지난 오후 2시 18분 고성군 현내면 초도리 바닷가에 불시착했다.
전명세 조종사는 즉사하지는 않았으나 군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고 구급차를 이용해 서울로 후송되는 중에 "탑승객이 다칠까 봐 몸을 던졌다"는 유언을 남기고 과다출혈로 결국 사망했다고 한다.
2. 실제 승무원 정보
[기장]
- 이강흔: 당시 37세로 공군 대령으로 예편한 뒤, 대한항공에 입사했다.
[부기장]
- 박완규: 6.25 전쟁 때 공군에 자원입대해 소티 100회를 갖고 있는 베테랑 조종사였으며 포로로 잡혔던 경험이 있었다.
- 수습 조종사 전명세는 육군항공대 조종사 출신으로, 중령으로 예편한 후 대한항공에 입사하여 이강흔 기장에게 교육을 받고 있었으며 이 사건에서 자신의 몸을 던져 수류탄 폭발을 막아냈다.
[항공 보안관]
- 최천일: 이전에 일어난 두 번의 납북 사건에 대한 조치로 훈련받은 14명의 항공 보안관 중 한 명이었다.
[객실 승무원]
- 객실 승무원 최석자가 탑승했다.
3. 납치범 인적정보
납치범인 김상태는 당시 22세였고 무직으로,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거진3리에 거주하고 있었다. 왜 여객기를 납치했는지는 그가 사살되었기 때문에 불명이지만 추측에 따르면 납북에 성공한 공작원들이 북한에서 엄청난 대접을 받았다는 기사를 보고 사건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높다. 사건 이후 중앙정보부와 군, 경찰이 김상태의 집을 수색했으나 간첩은 아니라는 것을 파악했으며 북한의 대남 도발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4. 결론
폭탄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순직한 전명세 수습 조종사는 사후 기장으로 추서 되어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으며
일등 보국훈장과 조종사 정복을 받았다. 장례식 때 그가 당시 대한항공 전무이사 전명섭의 친동생임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강흔 기장은 왼쪽 눈을 크게 다쳐 1.2 정도였던 시력이 0.3으로 나빠졌지만 치료 후 대한항공에 복귀하여 B727, DC-10, B747-200 등을 조종한 후 조종사로서 정년 퇴임했다.
2024년 6월 21일 해당 사건을 토대로 제작한 영화 하이재킹이 개봉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기에 실화 내용을 먼저 확인하고 보면 좋을 것 같아 포스팅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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